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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희정당, 복숭아꽃 피어난 공예 전시장으로

2026-10-08 13:29
 창덕궁 희정당이 닷새 동안 공예 작품으로 가득한 특별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왕이 머물며 손님을 맞았던 궁궐 전각 곳곳에 전통 공예와 현대 작품이 어우러지면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전시가 펼쳐진다.

 

창덕궁 희정당은 7일부터 11일까지 ‘2026 가을 궁중문화축전’에 맞춰 전각 전체를 개방한다. 이번 공간은 공간 스튜디오 WGNB의 백종환 대표가 전시 감독을 맡은 특별 전시 ‘조선 공간 미학: 백(白)의 질서’로 꾸며졌다. 왕이 머물렀던 어거간과 손님을 맞이했던 접견실, 귀빈실 등에 국가무형유산 전승자 26명과 현대 작가 7명의 작품 50여 점이 전시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는 흰 복숭아꽃이다. 벌과 나비, 천연기념물 팔색조까지 꽃나무 주변에 자리하고 있지만 모두 실제 생물이 아니다. 국가무형유산 궁중채화 최성우 보유자가 비단 생초를 이용해 만든 벽도화 2000송이를 고사목 가지에 하나씩 붙여 완성한 작품이다.

 

희정당은 전통 궁궐의 모습과 근대적 요소가 함께 남아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1917년 화재로 소실된 뒤 1920년 경복궁 강녕전의 부재를 활용해 다시 지어졌다. 외관은 전통 목조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내부에는 샹들리에와 카펫, 화려한 벽지 등 서양식 장식이 들어갔다.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 시대에는 왕의 집무 공간이자 외국 사신 등을 접대하는 장소로 사용됐다. 백종환 대표는 희정당을 처음 방문했을 때 전통과 서양 근대 문화가 함께 존재하면서도 조선의 미학이 남아 있는 공간의 질서를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의 핵심 주제인 ‘백(白)’은 단순히 흰색을 의미하지 않는다. 백 대표는 이를 ‘여백’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하나의 점이 생기면 나머지가 여백이 되고, 또 다른 점이 생기면 점과 점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전시는 이러한 관계를 전통 공예와 현대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접견실 중앙에는 ‘환대’를 주제로 한 대형 궁중채화 작품이 자리한다. 최성우 보유자는 궁궐 잔치에 사용됐던 벽도화가 하늘에서 내려와 희정당에 피어난 모습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넓은 접견실 동쪽과 서쪽 벽에는 해강 김규진의 대형 부벽화가 자리하고 있어 전통 회화와 궁중채화가 함께 어우러진다.

 

또 다른 접견실에서는 허유정 작가의 ‘희정(喜庭)’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을 은으로 표현했다. 과거의 상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그 시간을 품고 다시 피어나는 꽃의 모습으로 재해석했다.

 

왕의 거처였던 어거간에도 다양한 작품이 들어섰다. 염장 조대용이 만든 붉은 발이 공간에 드리워지고, 그 뒤에는 제와장 김창대가 제작한 용머리 모양 기와가 놓였다. 궁궐 특유의 무게감과 장인의 전통 기술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긴 복도의 끝에서는 갓일장 정춘모 보유자가 만든 ‘갓 조명’이 은은하게 빛난다. 전통 갓 제작 기술을 현대적인 조명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디자이너 스튜디오 워드와 함께 제작했다. 전통 공예가 현대적인 디자인과 만나 새로운 형태로 확장된 사례다.

 

백종환 대표는 희정당을 지나간 사건과 인물, 오랜 시간 축적된 공간의 기억을 작품과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국가무형유산 전승자와 현대 작가의 작업이 궁궐이라는 역사적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도 이번 전시의 주요 볼거리다.

 

 

 

궁중문화축전은 매년 봄과 가을에 열리는 문화유산 축제로 경복궁과 창덕궁, 덕수궁 등 서울의 주요 궁궐과 종묘 일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번 가을 축전에서도 ‘경복궁 한복 연향’, ‘창경궁 시간 여행’, 청소년 대상 ‘종묘 건축 탐험대’ 등 여러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조선 공간 미학: 백(白)의 질서’ 전시는 별도의 사전 예약 없이 창덕궁 현장에서 신청해 관람할 수 있다. 관람은 15분 간격으로 25명씩 입장하는 방식이며 하루 약 700~800명이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조선의 공간에 전통 공예와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이번 전시는 희정당의 역사적 분위기와 새로운 작품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