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공정위 쿠팡 김범석 총수 지정, 40년 만의 첫 미국인 CEO 규제
2026-04-30 13:54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의 기업집단 동일인을 기존 법인에서 창업주인 김범석 의장으로 전격 변경하며 5년 만에 규제의 칼날을 정조준했다. 이번 결정은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을 관리하기 시작한 이래 미국 국적의 미국 상장사 최고경영자를 총수로 지정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 공정위는 그간 외국인 총수 지정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으나, 쿠팡 내부의 실질적인 경영 지배구조와 친족의 참여 여부를 면밀히 검토한 끝에 예외 요건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이번 결정의 핵심 쟁점은 김 의장의 친동생인 김유석 씨의 경영 참여 여부였다. 공정위는 현장 조사와 청문회 자료를 통해 김 씨가 부사장급 직위를 유지하며 물류 및 배송 정책 결정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수백 차례에 걸친 회의 주재와 주요 계열사 실적 점검 등은 단순한 업무 수행을 넘어선 실질적인 경영권 행사로 판단됐다. 이는 자연인 총수 지정을 피하기 위한 예외 요건 중 하나인 '친족의 경영 참여 금지'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쿠팡 측은 공정위의 발표 직후 강력한 반박 입장문을 내놓으며 법적 대응을 공식화했다. 쿠팡은 김 의장과 친족이 한국 계열사의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아 사익 편취의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김 의장의 동생은 미국 본사인 쿠팡Inc 소속의 파견직일 뿐, 한국 법인의 등기임원이나 지배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쿠팡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엄격한 감시를 받는 상장사로서 투명한 지배구조를 유지해 왔음을 피력하며 행정소송을 통한 권리 구제를 예고했다.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됨에 따라 쿠팡이 짊어져야 할 법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은 한층 무거워질 전망이다. 이제 쿠팡은 김 의장과 그 친족이 보유한 해외 계열사의 현황과 주주 구성, 자금 거래 내역 등을 매년 상세히 공시해야 한다. 또한 총수 일가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이 금지되는 등 공정거래법상의 엄격한 사익 편취 규제를 직접적으로 받게 된다. 이는 그간 법인 동일인 체제 뒤에 숨어있던 총수의 개인적 책임론이 수면 위로 부상했음을 의미한다.

정치권과 외교가에서는 이번 사안이 한미 통상 갈등의 새로운 불씨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미국 공화당 의원 수십 명이 우리 정부의 조사를 자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행위로 규정하며 항의 서한을 보낸 상태다. 미국 상장사 CEO를 한국의 독특한 총수 규제 틀에 가두는 것이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공정위는 국내법에 따른 정당한 집행이며 미국 공시 제도와는 목적이 달라 이중규제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양국 간의 외교적 긴장감은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향후 전개될 행정소송에서는 김 의장 동생의 업무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승패를 가를 핵심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공정위의 실질적 영향력 판단을 지지할지, 아니면 형식적 임원 여부를 중시하는 쿠팡의 손을 들어줄지에 따라 향후 외국계 기업에 대한 동일인 지정 기준이 완전히 재정립될 수 있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까지 쿠팡은 김 의장 체제하에서 강화된 공시 의무를 이행하며 정부 당국과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게 됐다.












